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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두두] 기계, 멸망, 착취, 대안적 공동체, 대화 부족

by 나나와두두 2022. 7. 11.
※ 스포가 있습니다

김초엽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2021년 8월 18일, 자이언트북스가 출판했다.

한국 SF 장편소설이며, 총 392페이지이고, 정가는 15,000원이다.

책은 5부로 이루어져 있다. 모스바나, 더스트 폴, 프림 빌리지, 구원자들, 지구 끝의 온실

10만 부 판매를 돌파했고, 영상화가 확정되었다. (기대 중)

 

내가 겪었던 판타지 소설은 대부분 이름이 길고 낯설어서 인물들 파악이 어려웠다. 세계관 설정도 익혀야 하는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했다. 책을 빠르게 또 가볍게 읽고 싶은 나에겐, 점점 재미가 없어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작년 책 모임에서 정세랑 작가 SF 소설을 읽고서 관심이 생겼다. 자연스레 김초엽 작가를 알게 되었다. 책 이름을 여러 곳에서 들었던 터라 일단 무턱대로 읽었는데 긴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꽤 재밌었다.

 

 

망한 지구와 대안적 마을

한 연구소에서 아주 작은 단위 기계 연구를 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기계는 스스로 끝없이 분열하는 성질을 가졌고, 연구자들은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대피했다. 그게 지구 멸망의 시작이다. 더스트는 어디서든, 언제든 폭풍처럼 불어왔다. 바깥에 있으면 대부분 죽었다. 내성을 가진 사람들만 빼고.

 

"한 해 동안 나오미와 아마라는 대피소에 들어갔다가, 실험체로 차출되어 연구소로 옮겨졌고, 내성종 구조 단체에서 구조되었다가 또 다시 피를 착취당했다."

 

대피소인 돔은 세계 모든 사람이 들어갈 만큼 충분하지 않았고, 충분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돈과 힘이 없는 사람들은 내쫓기고 죽었다. 다만, 내성을 가진 사람들은 살려주었는데, 그들의 피를 착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죽었다. 아마라와 나오미는 연구소에서 탈출해, 대니의 아량으로 마을 리더인 지수의 허락을 받아 대안적 마을인 프림 빌리지에 합류했다.

 

"결국은 더스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프림빌리지는 숲 속에 있었고, 여성과 어린이들만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피소 대신 분해제를 마셨다. 분해제는 온실을 관리하는 레이첼이 만들었다. 레이첼은 온실에서 혼자 더스트 오염을 낮추는 작물, 더스트 오염에도 열매를 맺는 작물들을 연구했다. 마을 사람들은 온실에 희망을 가졌고, 폐쇄된 대피소에서 주은 물건들로 살림을 유지했다. 한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은 레이첼의 작물이 더스트의 강력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얻자,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숲 바깥의 세계가 재건되지 않으면 이곳의 운명도 예정되어 있어."

 

 

돌다리는 두드리고, 마음은 물어보자

지수는 레이첼이 자기에게 끌림을 느끼는 이유를,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첼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레이첼 뇌를 고칠 때 어떤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첼은 그전부터 지수에게 호기심이 있었다. 어쩌면 끌림은 지수 생각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을 수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지수는 레이첼의 끌림을 부정했고, 부정당한 레이첼은 지수를 떠났다.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다 죽음에 이른다. 아련해서 아름답고 또 슬프긴 한데, 대화가 부족했다는 건조한 결론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내면을 평생 궁금해하기만 하다 끝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내성을 가진 사람들은 '내성종'이다. 내성종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은 인류 대학살 더스트에 죽지 않을 만큼 강했지만, 단지 사람들 두 세명에 착취될 만큼 약했다. 나오미와 아마라는 내성종이었고, 그들은 어린이 시기에 끔찍한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남았다.

 

이들과 비교되는 건 지수이다. 지수도 내성종이긴 하나 나오미보다 약한 내성을 가졌다. 그러나 지수는 기계를 고칠 수 있다는 능력 덕분에 사람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다. 지수는 대피소 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피소를 떠났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면서 기계를 고쳐주고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 그 능력이 필요한 주민들은 지수가 내성종인 걸 알아도 쉽게 해치지 못했다. 반면, 나오미와 아마라는 음식을 구하기 위해 헐 값에 가진 것들 내놓았고, 그마저도 납치될 위험에 처한다.

 

그 시대에 있었다면, 나는 내성종이길 원했을까? 하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렵다. 나를 살리는 건 나도 모르게 가진 것들이 아닌 내가 자유자재로 사용할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오미와 아마라가 살 수 있었던 건 내성종 이전에 탈출할 용기와 위험을 감지하는 지혜 덕분이라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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