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시대에서 휴식을 취하는 법
나는 초등학생 때,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추는 언니가 부러웠다. 그래서 눈이 안 보이는 척을 하며, 부모님과 안경점에 들어갔다. 그 후 시력검사에서 거짓 진술을 하여 안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이 사건을 중학생 때부터 두고두고 후회했다. 다신 과하게 욕심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는데, 다짐 때문인지 머피의 법칙처럼 나는 내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욕심내다 무리하면 늘 망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예외 없이. 가령, 재작년 겨울에 목도리를 한 채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목도리가 한 바퀴 풀어졌는데, 자전거를 멈추고 싶지 않아 탄 상태로 목도리를 다시 목에 두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도리가 자전거 바퀴에 들어가서 목도리도 잃고 자전거도 못 타게 되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며, 어머니에게 한탄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는 내가 아기 시절에 기질과 비슷한 심리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내가 매우 욕심이 많은 아이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과자를 먹을 때 입 안에 가득 과자가 있는 걸로는 부족한 아이. 한 손도 아닌 양손에도 과자를 가득 집고 있어야만 만족하는 아이인 것 같다고 의사가 예를 들며 설명했다고 했다. 당시 나는 무리하게 일을 맡아 결국 소진되는 상황이 반복하는 시기였다. 대학생도 되고서 나는 학습 커뮤니티, 아르바이트, 자원봉사, 동아리, 프로젝트, 교지, 시민단체 활동 닥치는 대로 일을 늘렸다. 내 시간표를 퍼즐처럼 생각해, 빈 공간이 있으면 새로운 퍼즐을 찾으러 나섰다. 몇몇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몇몇은 그 반대였다. 이 이야기를 선배에게도 한 적이 있다. 선배는 요즘 대학생들은 다 바쁜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들 비슷하게 산다는 것이다. 끝없이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쉴 때조차 고3처럼 찜찜한 마음으로 쉬는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당연하다. 우리는 초중고 12년 동안 자기 능력을 쌓고, 그걸 증명하는 압박감에 적응하는 걸 배웠다. 그러니 또 다른 성적표인 취업 시기와 가까워질수록 성취 강박은 심해질 수밖에.
모든 사람은 어떤 부분에선 과잉이고, 어떤 부분에선 결핍이다. 그런데 과잉과 결핍인 부분들이 사람들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비슷하다면, 이는 개인적이기보다 사회적이다. 현대인은 돈, 음식, 성적, 스펙, 섹스, 술, 담배, 게임을 매우 욕망한다. 그러나 휴식, 관계 맺기(우정), 자연과 호흡하기, 사색, 절제 등은 결핍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자극과 감각도 한 몫 한다. 휴대폰, 라디오, TV, 전광판, 버스 광고, 가게 음악 소리 등에 우리는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다. 생각에 빠지는 게 쉽지 않다. 무엇이 과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점검하는 틈조차 없다.
소로,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는 생각도 많고 자극도 많은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듣고 즐기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이 시대에 살지도 않았으면서, 조언은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는 이 세 명이 한 조언의 공통점으로 "머무름과 절제" 뽑았다. 소로와 쇼펜하우어는 판단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보고 들으라고 한다. 감동 받을 순간을 기다리지 말고 그 순간을 찾아내라고 덧붙인다. 스스로, 천천히, 명확하게, 자세히, 온전한 집중으로.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p.128)" 현대 사회인에게 부족한 것들만 요구한다. 시각과 청각으로 진정 느끼고 즐긴다면, 끝이 없는 의지의 욕망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다. 덧붙여 우리가 직접 생각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쇼펜하우어는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p.179)"고 말했다. 책에 집착하는 나는 찔렸다. 배우는 것만큼 내 것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내 것을 만드는 게 지칠 때 채찍처럼 이 말을 생각해야겠다.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욕망한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불안의 부재로 정의한다. 기쁨을 누리려면 고통을 피하면 된다. 욕망을 세 가지 구분하는데,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한", "자연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자연스럽지도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텅 빈" 이 중에 텅 빈 욕망이 가장 큰 고통을 낳는다고 말했다. 텅 빈 욕망을 충족하고 난 후 채우지 못 한 상태라는 고통이 생긴다. 그러니 만족을 자주 느끼고 싶다면, 충분히 좋은 것들에 머무르고, 텅 빈 욕망을 절제하자.
- 저자
- 에릭 와이너
- 출판
- 어크로스
- 출판일
- 2021.04.28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율적인 시간 관리법 (일주일은 금요일부터 시작하라) (1) | 2022.10.21 |
---|---|
[퀴어로맨스영화후기] 궁지에 몰린 쥐는 치즈 꿈을 꾼다 (0) | 2022.10.20 |
제24회 정동진영화제 영화후기 (+베리어프리) (1) | 2022.09.01 |
김초엽, 수브다니의 여름휴가(퀴어 소설) (0) | 2022.08.29 |
[두두]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퀴어 로맨스 단편집 (+토론거리) (0) | 2022.07.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