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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제24회 정동진영화제 영화후기 (+베리어프리)

by 나나와두두 2022. 9. 1.

<SECTION 2>

코끼리 뒷다리 더듬기 Elephant in the Dark (김남석 | 2022 | 21분 15초 | 컬러)

시각장애인 우현은 촬영 장비를 지키다가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 사이에 누군가 카메라 렌즈를 깨트리고 갔다. 이로 인해 선배들의 졸업작품 촬영에 지장에 생긴다. 감독을 맡은 선배는 다른 이들에게 우현을 옹호하다가 "애가 아프잖아"라는 말을 한다. 시각장애를 가진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이지만, 선배는 우현이를 옹호하는 데 그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변명은 우현이를 학교에서 더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들에게 우현이는 '촬영장 동료' 또는 '학교 후배'보다는 '시각장애인'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우현은 범인 찾기에 나선다. 곁에 있던 청각장애인 하얀이 이를 돕는다. 하얀은 CCTV에 흐릿하게 나온 인상착의를 추측하고 사건 현장에서 범인이 흘리고 간 증거품을 찾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우현은 선배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과 자신을 옹호했던 선배의 말에 마음이 머물러 있어서 하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하얀이 하는 말이 다 귀찮고 시끄러울 뿐이다. 우현은 하얀에게 크게 짜증을 내고 만다. 그러다 곧 선배로부터 촬영 현장은 일단 마무리했다며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아프다는 말을 한 거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우현은 안도감을 느끼고 하얀에게 사과를 한다. 우현과 하얀은 다시 범인 찾기에 나선다.

우리는 누군가 (자기 기준에서) 의아한 행동을 할 때, 그 원인을 그 사람의 성별, 나이, 외모, 출신 국가 및 지역, 학력, 성적 지향, 장애, 직업으로 설명하고자 하려는 경향이 있다.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보다 대충 넘겨짚고 의문을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쌓이게 되면 그 당사자는 점점 더 진짜 알지 못한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으로 버무려진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존재만 있을 뿐이다. 결국 단절된다.

 

청각장애 베리어프리 영화는 본 적이 많고, 넷플릭스에서는 항상 자막을 켜놓고 보는 편이라 익숙했다. 반면, 시각장애인 베리어프리 영화는 처음이었다. 장면을 음성으로 설명한다. 그 음성은 일정한 음으로 감정없는 목소리로, 영화 분위기를 좌우하는 데 한 몫하기도 했다. 베리어프리 영화가 점점 더 많아지길!


<SECTION 3>

쿠키 커피 도시락 Cookie Coffe Dosirak (강민지, 김혜미, 이경화, 한병아 | 애니메이션 | 2022 | 13분 7초 | 컬러)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이다. 일단 애니메이션 그림체가 깔끔하고 귀여워서 눈을 뗄 수 없다. 동물을 사람처럼 연출한 작품으로, 토끼와 다람쥐, 독수리 등이 등장한다. 중년 여성 4명의 친구들이 모여 쿠키와 커피를 먹고 마시며 때로는 도시락을 들고 소풍에 나와 수다를 떤다. "이해할 수 없지만 웃어넘겨야 했던 차별"들에 관한 이야기.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람들이 중년 여성을 어머니라고 부는 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다.

 

사회복지실습에서 바자회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 중장년이었다. 그중에서 여성을 만날 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여사님? 어머님? 여성분? 사모님?  사회복지사님들이 어떻게 그들을 부르는지 관찰했고, 정답은 "어머님"이었다. 나도 그렇게 중장년의 여성들을 불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찜찜했다. 첫째, 중장년 여성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있는 게 아니기에, 어머님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둘째, 중장년 여성들을 모두 '어머니'로 치환하는 것은 그 시기의 여성들은 모두 '어머니'이어야 한다는 사회 억압적인 구조를 답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호칭이 적절할까? 이 부분에 대해 실습일지에 조언을 구했고 실습지도자님도 함께 고민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직까지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궁금해서 찾아본 단어>
여사님: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
사모님: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
아줌마(아주머니): 중년 여성을 일컫는 칭호

<SECTION 7>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Notes from unknown (권하정, 김아현 | 다큐멘터리 | 2021 | 85분 | 컬러)

 

<싱어게인> 최종 우승자인 이승윤이 스타가 되기 전, 무명시절 이승윤을 두 감독이 찾아간 이야기이다. 두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이승윤의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 찍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영화는 어떻게 그 뮤비를 찍게 되었는지 이유를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초반 10분까지는 감독의 스토리가 지루했다. 감독은 우연히 이승훈 노래를 들었고, 그 노래가 그냥 좋았다고 그래서 무언가를 찍고 싶어 졌다고 말한다. 나는 이승윤 팬도 아니고, 감독 팬도 아니라서 내가 왜 이걸 보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야외에서 영화를 보니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그리고 이중주차를 해서 나갈 수도 없다) 계속 봤다. 그러다 보니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원활히 촬영하길, 무사히 편집감독을 구하길, 촬영 대여실과 촬영 일자가 맞길, 소품이 원하는 가게에 있길 하고 바랐다. 이게 스토리가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과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

 

 

영화제는 재밌었다. 베리어프리를 고려한 영화제가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재밌었던 영화는 땡그랑 동전상에 뽑히진 못했지만 (ㅠㅠ) 다음에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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